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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본문

역사_대한민국

제1차 세계 대전

ㅅㅏ진인생 2015. 4. 30. 00:47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1914년 7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에 대한 최후통첩을 세르비아가 거부하자, 바로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독일 제국

1914년 8월 2일

러시아가 세르비아 지원을 위해서 총동원령을 선포하자, 삼국 동맹에 의거하여 동맹국 오스트리아를 지원하기 위해서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오스만 제국

1914년 11월 1일

반영국, 친독일 여론이 있었지만, 중립을 지키며 관망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오스트리아가 오스만의 발칸 지역을 점령하고, 이탈리아의 리비아 강제 점거로 동맹국과도, 러시아가 있는 연합국과도 쉽게 함께 할 수 없었다. 독일의 집요한 외교 노력과 장관 엔베르 파샤의 강력한 친독일 정책, 그리고 오스만 영해에 피신 중이던 2척의 독일 군함을 통해, 오스만이 흑해의 러시아 기지를 폭격함으로써 연합국에 의해 전쟁이 선포되었다.

불가리아 왕국

1915년 10월 14일

본래 친 러시아, 반 오스만 국가였으나 제2차 발칸 전쟁의 패배에 따른 원한을 갚기 위해서 세르비아에다 선전포고를 하면서 동맹국에 가담했다.

연합국

 

세르비아 왕국

1914년 7월 28일

사라예보 사건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최후통첩을 거부하여 침공을 당했고,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연합군으로 전쟁에 뛰어들었다.

러시아 제국

1914년 8월 2일

같은 슬라브 국가이며 후견국이기도 했던 러시아에게 세르비아는 발칸 전쟁의 영향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고,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를 침공하자 러시아는 즉시 총동원령을 선포하였으며 이를 해제하라는 독일의 요구를 거부하자 독일의 선전포고를 받게 된다.

프랑스 제3공화국

1914년 8월 3일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 독일이 슐리펜 계획을 발동시키며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한다. 물론, 프랑스도 삼국협상에 의해 독일과의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벨기에

1914년 8월 3일

중립을 선언했지만 슐리펜 계획을 발동시킨 독일군이 벨기에 영토를 통과하려는 것을 벨기에군이 거부하고 끝내 영토 통과 승인을 받지 못하게 되자, 독일은 벨기에의 중립을 무시하고 침략한다.

영국

1914년 8월 4일

삼국 협상에도 불구하고 중립을 지키려던 영국이었지만, 독일이 벨기에의 중립을 무시하고 침략을 하자 이를 이유로 독일에 선전포고한다.

몬테네그로 왕국

1914년 8월 5일

발칸반도 남부의 소왕국이었던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와 언어, 문화, 종교적 동질성 및 오스트리아에 대한 강한 반감 등으로 인해 세르비아를 지지한다.

일본 제국

1914년 8월 23일

영국의 동맹국이었던 일본은 영일동맹의 의무를 들어 독일에 선전포고한다. 그러나 애당초 영일동맹은 러시아의 남진에 대항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저 핑계에 불과했고, 일본은 독일 본토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립된 독일의 아시아-태평양 식민지를 노리고 참전한 것이다. 실제 일본은 제발 병력 좀 보내달라는 영-프의 요청을 무시하고 강 건너 불구경만 했다.

아시르 이드리드 토후국

1915년 5월

영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이탈리아 왕국

1915년 5월 23일

삼국 동맹의 하나였으나, 오스트리아와의 이탈리아 북쪽 영토 문제도 있고 하여 핑계를 대고 1차 대전 직후에는 중립을 선언했다. 이후 전황의 이해득실을 따지면서 연합국의 승리가 유력하다고 판단하고 연합국으로 참전하여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네지드 하사 토후국

1915년 12월 16일

영국과의 다린 조약에 따라 오스만 제국과 전쟁 개시

포르투갈 제1공화국

1916년 3월 9일

포르투갈 왕정복고 전쟁 이후 수백여 년간 영국의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포르투갈은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으나 영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1916년 2월 말부터 자국 령에 들어오거나 지나가는 독일 선박들을 나포하고 화물을 압류했다. 당연히 이에 격분한 독일이 포르투갈에 선전포고를 한다.

헤자즈 왕국

1916년 6월

당시 메카 태수였던 후세인 빈 알리는 협상국 측에 '오스만에 대해 반란을 일으켜준다면 아랍인들의 단일국가와 독립을 보장해 주겠다.'라는 약속을 받았고, 후세인 빈 알리는 이에 승낙한다. 네지드 토후국 및 시리아와 이라크 방면 아랍 반란군과 함께 아랍 반란을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루마니아 왕국

1916년 8월 27일

3년여 동안 중립을 지켜온 루마니아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동맹국에 불리해지는 전황 등을 토대로 전리품 획득을 위해서 늦게나마 참전을 결정하고 브루실로프 공세를 틈타서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를 한다. 그리고 겨우 1년 만에 독일군에게 본토를 다 점령당하고 항복한다. 다만 전쟁 종료 후에는 승전국으로 영토가 2배로 늘어나게 된다. 단, 이게 그냥 조약으로만 얻은 것은 아니고, 종전 직후 벌어진 헝가리와의 전쟁에서 점령한 영토를 조약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미국

1917년 4월 6일

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기에, 유럽과 전쟁을 한다면 영국, 프랑스, 독일 사람들끼리 내전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국내 영토 개척하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그냥 돈이나 벌자는 태도였다. 그러나, 독일의 U-보트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영국 상선 루시타니아 호가 격침되어 미국인들이 죽게 되자 독일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었으며, 심지어 독일이 멕시코에게 미국을 공격하라고 했다는 내용의 치머만 전보가 공개되자 미국 국내의 여론이 대폭발하게 되면서 마침내 연합국으로서 참전을 선언한다. 하지만, 이런 여론 악화의 이면에는 그동안 영국과 프랑스에게 돈을 빌려주고 외상으로 물건을 제공했던 미국의 자본가들이 세계대전에서 영국 & 프랑스가 독일에게 패배하면 빌려준 돈을 못 돌려받을까 봐, 우려했던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치머만 전보 사건이 미국의 참전에 결정적이었다.

쿠바

1917년 4월 7일

미국의 전쟁 수행에 합류

그리스 왕국

1917년 6월 30일

당시 1차 대전에서 그리스는 중립을 유지하길 원했는데, 총리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는 그리스의 이익을 위해선 궁극적으로는 연합군에 가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중립을 유지하던 중에 갈리폴리 상륙작전이 실패하고 불가리아가 갑자기 동맹국에 가담해 세르비아를 공격하자 포위당할 위기에 빠진 세르비아군은 알바니아를 통해 그리스로 후퇴하였고 불가리아군이 아직 전쟁 준비가 덜 된 그리스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예상에 베니젤로스는 연합군이 테살로니키로 들어와서 세르비아를 지원할 것을 요청하였다. 베니젤로스의 독단에 격노한 국왕 콘스탄디노스는 베니젤로스를 해임하는데, 이미 테살로니키에 상륙한 연합군은 전쟁 준비에 나섰으며 불가리아군은 이에 대응하여 그리스령 마케도니아를 침공한다. 1917년 6월 콘스탄디노스는 퇴위하고, 둘째 아들인 알렉산드로스가 즉위하였으며 정권을 잡은 베니젤로스는 정식으로 동맹군에 선전포고를 하고 그리스는 연합군 측으로 참전한다.

태국

1917년 7월 22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였으며 서부 전선에 1284명의 병력을 파견하였다.

중화민국/북양정부

1917년 8월 14일

제3혁명과 위안스카이 사망으로 공화국이 된 중국은 독일에게 빼앗긴 조차지의 이권과 중국 영토를 다시 되찾고, 새 국가 건설에서 세계열강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 연합국으로 가담한다. 그러나 독일의 조차지는 사라졌었고 중국의 말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브라질

1917년 10월 26일

공식적으로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따른 피해 때문에, 그에 따른 반독일 여론 증가였지만... 브라질은 당시 세계 커피 생산량의 90% 이상을 독점하는 커피 플랜테이션 국가였는데, 1차 대전 시 동맹국에 대한 해상봉쇄로 커피 판로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이후, 미국과 영국이 "커피 재고 우리가 다 사줄 테니까 독일에다 선전포고해라."라면서 제안을 했고 브라질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sharpsoul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 - 동맹국, 연합국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 - 동맹국, 연합국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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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World War I, WWI 또는 WW1)은

1914년 7월 28일부터 1918년 11월 11일까지 일어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대전이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기 전 까지는 단순히 세계 대전(World War) 또는 대전(Great war)라고 불렸다.[5][6][7] 미국에서는 처음에 유럽 전쟁(European War)라고 불렸다.[8]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전투원 90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기술 및 산업의 고도화와 전술적 교착 상태로 인해 사상자 비율이 악화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은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전쟁 중 하나이며, 참전국의 수많은 혁명들 등을 포함한 주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났다.[9] 이 전쟁은 전 세계의 경제를 두 개의 대치되는 거대한 동맹들의 강대국으로 끌어당겼다.[10] 하나는 대영제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의 삼국 협상을 기반으로 한 연합국이며, 다른 하나는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있는 동맹국이다.

 

이탈리아 왕국은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함께 삼국 동맹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동맹국에 참여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가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침공했다.[11] 이러한 동맹은 재조직되었고 더 많은 국가가 전쟁에 참여하도록 압력을 가하며 확장되었다. 이탈리아 왕국, 일본 제국, 미국이 연합국에 가입했으며 오스만 제국, 불가리아 왕국이 동맹국에 가담했다. 궁극적으로 6천만명의 유럽인을 포함한 7천만명의 군인이 전쟁에 가담하면서 역사적으로 가장 큰 전쟁 중 하나에 동원되었다.

 

[12][13] 이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은 신제국주의때문이었지만, 즉각적인 원인으로는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왕위 후계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한 사건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게 최후 통첩을 내리면서 7월 위기가 시작되었고,[14][15] 이전에 수십년에 걸쳐 형성된 국제적 동맹이 연결되었다.

 

수주 이내에 강대국끼리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 분쟁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공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었다.[16][17] 러시아가 동원령을 내리면서 독일군은 중립국인 룩셈부르크와 벨기에를 침공하면서 프랑스로 진격했고, 이로 인해 영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다. 파리 앞에서 독일군의 진격이 멈춘 이후, 서부 전선은 1917년까지 참호전과 같은 소모전 양상으로 굳어지게 된다.

 

한편, 동부 전선에서는 러시아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로 진격하는데는 성공했지만 동프로이센 침공은 독일군의 반격으로 실패하게 된다. 1914년 11월에는 오스만 제국이 참전하면서 전역이 코카서스, 메소포타미아, 시나이 반도 등으로 확대되게 된다.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는 1915년 참전했고, 루마니아 왕국은 1916년 참전했으며, 미국은 1917년 참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1917년 3월 붕괴된 이후 동부 전선이 해소되었으며 이후 10월 혁명으로 인해 동맹국이 러시아의 영토를 획득했다. 1918년 11월 4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휴전에 합의했다. 1918년 서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공세 이후, 연합군은 일련의 공세를 방어한 이후 독일군의 참호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독일 11월 혁명 이후, 독일이 1918년 11월 11일 휴전에 합의하면서 연합국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 오스만 제국 등 4개 주요 제국이 해체되게 되었다. 앞의 2개 제국은 승계국가가 탄생했지만 많은 영토를 잃었으며, 후자의 2개 제국은 완전히 해체하게 되었다.

 

유럽 및 서남아시아의 지도는 새로운 독립 국가가 생기면서 새롭게 그려지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으로 국제 연맹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목표는 유럽의 민족주의의 부활과 독일에서 파시즘의 장악으로 인해 상황이 악화되며 실패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하게 되었다.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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