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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ㅅㅏ진인생 2012. 5. 23. 10:44

중국의 역사

 

중국의역사

상(商)(기원전 1600년경 - 기원전 1046년)은 역사적으로 실재했다고 여겨지는 최초의 중국 왕조이다.

주(周)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는 은(殷)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므로 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스스로의 나라 이름을 칭할 때는 은나라를 세운 부족 이름인 상(商)이라는 이름을 더 많이 사용했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상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 전설상의 인물인 황제(黃帝)의 후손 탕왕(湯王)이 세웠다고 전해진다. 탕왕은 하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폭군인 걸왕을 무찌르고 상나라를 개국하였다. 마지막 왕은 무희 달기와 함께 국민을 잔혹하게 다룬 31대 주왕(紂王)이며, 주나라 시조인 무왕(武王)에 의해 멸망하였다.

19세기 말까지 전설상의 왕조로만 취급되었으나 20세기 초에 은허가 발굴되고 고고학적 증거들이 나타나 실재하는 왕조였음이 인정되었다

 

주(周)는 기원전 10세기 경부터 기원전 256년까지 상을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이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나라로, 이 시기에 철기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견융이 침략하여 기원전 771년 유왕아 살해되고 제후에 의해 옹립된 평왕이 호경(시안)에서 낙읍(뤄양)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이전을 서주, 이후를 동주라고 구분한다.

주나라는 본격적인 봉건제도를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국 초부터 무왕은 자신의 친족들과 태공망 등 개국공신들에게 영토를 나눠주며 다스리게 되었고, 이것이 시간이 지나 독립적인 국가를 유지하는 봉건체제가 되었다. 춘추 시대의 봉건 국가들은 주나라 왕실의 정통성을 인정하며 그 안에서 자신들의 패권을 다퉜으나, 전국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나라 왕실의 정통성은 유명무실화 되었고, 급기야 주나라 왕실이 폐지되고 전국 칠웅의 국가들이 형식상으로도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임을 내세우게 된다

 

춘추시대(중국어: 春秋時代, 병음: Chūnqiū Shídài)는 중국의 역사에서 기원전 770년에서 기원전 403년 사이의 시기를 말하며, 주나라의 동천 이후 진나라의 중국 통일까지의 시기를 부르는 춘추 전국시대의 전반기에 해당된다.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에서 이 이름이 유래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와의 경계는 춘추시대에 열국의 강국 진(晋)이 조·위·한의 3국으로 분열되어 동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받은 기원전 403년까지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진의 집정하에 있던 지백(知伯)을 멸망시키고 사실상 3국의 분립이 성공한 기원전 453년으로 올려 잡는 설도 있다.[1]

중국의 고대 춘추시대 제후 간 회맹(會盟)의 맹주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 하는데, 제(齊) 환공, 진(晉) 문공, 초(楚) 장왕, 오(吳) 합려, 월(越) 구천이 있다.

한편 진 목공, 송 양공, 오왕 부차 등을 꼽는 경우도 있다.

 

진나라(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6년)는 시황제에 의해 전국 시대를 통일한 제국이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다. 제 31대왕 진 시황제는 법가사상으로 하여금 중국을 통일하였다.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 제31대 왕 영정이 황제에 오른 뒤만을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함양을 수도로 삼고 약 30여년이 지속됬다. 멸망원인은 강압적인 만리장성 축조와 아방궁 축조, 엄격한 형벌 등에 의해서이다

 

한(漢, 기원전 206년 ~ 220년)은 진 이후의 중국의 통일 왕조이다. 한 왕조는 고조 유방(劉邦)에 의해서 건국되었으며 약 400년을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시기 중의 하나이고, 오늘날에 중국인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한족 역시 이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대에 중국은 유교를 공식 국교로 승인하고, 이 사항 아래 국가의 기본 틀을 잡아 나갔다. 인구는 5천 5백만에 달했으며 농업, 수공업, 상업 등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은 주위의 한반도, 베트남, 몽골, 일본, 중앙아시아 등의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원전 111년에는 베트남의 남비엣(베트남어: Nam Việt)을 정복하였다.

한 왕조는 그 시기에 따라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나누어지는데, 전한과 후한 사이에는 왕망이 전한에 반란을 일으켜 세운 신이 존재한다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39년~589년)는 한족이 세운 남조와 유목민족이 세운 북조가 대립하다, 수나라가 통일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 강남에는 송(宋), 제(齊), 양(梁), 진(陳)의 4개 왕조가 차례로 흥망했는데, 이것을 가리켜 남조(南朝)라고 불렀다. 또한 같은 건강(建康; 건업(建業)의 새이름)을 수도로 삼았던 삼국시대의 오나라와 동진, 수나라까지 합쳐 육조(六朝)라고 불러 이 시대를 육조시대라고 부르기도 하나, 이는 주로 문화사를 다룰 때 쓰이는 시대 구분이다.

이 시대 강남이 크게 개발되어, 이후 수나라, 당나라 시대에 강남은 중국 전체의 경제 기반이 되었다. 남조는 정치적 혼란과는 대조적으로 문화와 불교 등이 융성하여 육조 문화라 불리는 귀족 문화가 번영하여 도연명, 왕희지 등이 활약했다.

화북에서는 선비족 탁발부가 건국한 북위(北魏)가 오호십육국시대의 혼란을 수습하고, 북방 유목민의 부족제을 해체하고 귀족제에 의거한 중국적인 국가로 탈피했다.

북위는 육진의 난(六鎭之亂)을 거치면서, 534년에 동위(東魏), 서위(西魏)로 분열하였다. 동위는 550년 북제(北齊)로 정권이 바뀌고, 서위는 556년에 북주(北周)가 대신했다. 577년 북주는 북제를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였다.

그후 581년 수나라의 양견이 북주의 양위를 받아 제위에 오른다. 589년 수나라는 남조의 마지막 왕조 진나라를 멸망시켜 중국을 재통일하였다. 화북의 북위, 동위, 서위, 북제, 북주의 5개 왕조를 가리켜 북조(北朝)라고 불렀고, 여기에 수나라도 합쳐야 한다는 설도 있다. 이연수(李延壽)의 북사(北史)에는 수나라를 북조에 넣기도 하였다

 

수(隋, 581년 ~ 618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서진이 멸망한 후 분열되었던 중국을 약 300년만에 재통일한 왕조이다. 그러나 2대 황제 양제 때 폭정(暴政)으로 인해 멸망하고, 그후 약간의 혼란기를 거쳐 당나라가 중국을 재통일 하였다. 수도는 대흥성(大興城: 현재의 시안(長安))이었다.

 

당(唐 618년 - 907년)은 수나라(隋) 이후 건국된 중국의 왕조이다. 당나라는 선비족 계열의 귀족인 이연(李淵)에 의해 세워졌다.

 

오대십국 시대(五代十國時代, 907년~960년)은 중국 역사에서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송나라가 건립된 960년까지,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화북을 통치했던 5개의 왕조(오대)와 화중·화남과 화북의 일부를 지배했던 여러 지방정권(십국)이 흥망을 거듭한 정치적 격변기를 가리킨다. 오대십국의 오대는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를 뜻하며, 십국은 오월, 민, 형남, 초. 오, 남당, 남한, 북한, 전촉, 후촉을 포함한다

 

원나라(元 ; 중국 대륙에 있던 국가로서는 1271년~1368년, 유목국가로는 1271년~1635년)는 일반적으로 중국이 몽골의 지배를 받은 시기를 말한다. 몽골족의 정복 왕조 원나라는 중국과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한 영역을 지배하다가 명나라를 건국하는 주원장에 의해 북쪽으로 쫓겨난 뒤 ("북원"), 유목민 국가로 1635년까지 존속한 몽골인 왕조로서, 몽골 제국의 대칸 직할 세습령이었다. 정식 국호는 대원(大元)이었다.

원나라는 송나라 를 멸망시킨 이민족의 정복 국가이며, 중국을 식민 지배하였다. 이후 명나라에게 중국의 지배권을 물려주게 된다. 원나라는 중국을 지배했으되 한족화 되지는 않았으며, 지배층뿐 아니라, 제도 및 문화에서도 기존 몽골 제국의 유목 국가적인 특성을 유지했다. 그 때문에 원나라라는 호칭 대신 유목민의 나라를 가리키는 울루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대원 울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게 있어 이 시기는 몽골인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중국인의 인구가 급감하였으며, 극심한 민족 차별 정책으로, 중국인들은 하층 민족으로 구분되어서 노예와 같은 생활을 했다. 그로 인해 중국식 성명을 사용하지 못하고 몽골식 성명으로 이름을 바꿔야 했다.

 

명(明, 1368년 - 1644년)은 중국 역대 왕조중 하나로써 주원장이 원나라를 몰아내고 세운 한족의 왕조이다. 대명(大明)이라고도 불린다. 멸망 후에는 청나라가 명나라의 재건을 목표로 한 남명(南明)정권을 제압하여 중국을 지배했다

 

청나라(淸) 또는 청 제국(淸帝國)은 일반적으로 중국이 만주족의 지배를 받은 시기를 말한다. 원래 청나라는 1616년에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동북 지역에 건국한 이민족의 나라를 말하는데, 초기에는 금(흔히 “후금”이라 부름)이었다가 후에 세력을 강화하여 청으로 국호를 바꿨다.

이민족의 나라 청나라는 한족의 중국 명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몽골, 위구르, 티베트를 모두 정복하여 몽골 제국(원나라)을 제외한 역대 중국 왕조 중에서 가장 큰 영토를 이루게 되며, 이민족으로써는 가장 오랫동안 중국을 지배하였다. 1912년 선통제 푸이 대에서 서구열강 세력 등의 영향으로 국력이 약해져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국 역사에서 2천여 년간 이어졌던 제국의 시대가 끝나게 된다.

중국에게 있어 이 시기는 만주족에게 식민 지배를 당한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청나라 초기에는 만주족에 의한 학살로 인구가 급감하기도 했었고, 피지배계층 한족들은 만주족의 풍습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다 학살과 탄압을 당했으며, 이로인해 말기에 만주족의 중국 지배를 반대하는 '멸만흥한(滅滿興漢)'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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