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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고대사… 새로 쓴 고조선사(세계일보) 본문
잃어버린 고대사… 새로 쓴 고조선사
입력 : 2015-10-23 19:51:12 수정 : 2015-10-23 19:51:12
고조선과 동시대 쓰여진 中 사서토대 복원… “부여·고구려·동예 등 제후국에 의해 승계
위만조선·한사군 포함 시킨 것은 명백한 오류… 단군조선, 한반도·만주 토착인이 세운 국가”
윤내현 지음/만권당/3만5000원 |
고조선 연구(상)/윤내현 지음/만권당/3만5000원
우리는 사실상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대사 관련 기록물들이 거의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수십 차례 전란과 일본 등 외세 침략으로 고대사 기록물들이 불타 없어졌거나 강탈당했다. 그래서 고대사는 ‘뜨거운 감자’인 광복 전후사만큼이나 논란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껏 전해오는 고조선 관련 기록물은 고려 말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 정도다. 세종실록 등 조선시대 사서에 고조선이 나오긴 하나 대부분 고려 때 것들을 베껴쓴 것으로 사료적 가치는 별로 없다. 고대사 전문가인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77)가 쓴 ‘고조선 연구’는 중국 쪽 사서를 토대로 우리 고대사를 복원해냈다.
윤내현 단국대 명예교수가 중국 사서들을 토대로 만든 고조선 후기 강역도. 남쪽은 지금의 중국 베이징 부근까지 이르고 있다. 만권당 제공 |
윤 교수는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연구원 시절 중국 사서와 북한 쪽 사서들을 접하고선 아연실색했다. 고대사 부분이 지금 남한에서 통용되는 것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이후 윤 교수는 40여년간 고대사 연구에 몰입해 1994년 이 책을 처음 출간한 데 이어 21년 만에 개정판을 냈다. 윤 교수는 국내 사학계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삼국사기 등을 배제했다. 이들은 고조선 붕괴 이후 1300여년이 지난 후에야 쓰여졌기에 정확한 기록이 아니라는 게 윤 교수 주장이다. 윤 교수는 고조선이 존속했던 동시대나 붕괴 직후 쓰여진 중국 쪽 사서들을 토대로 고조선사를 복원해냈다. 윤 교수는 하버드대에서 후한서, 삼국지, 송사, 남사, 요사, 양사 등 수백권을 섭렵했다. 이 가운데는 북한 학자 리지린(사망 추정)이 쓴 고조선연구(1964) 등도 있다. 윤 교수는 서문에서 고조선이야말로 한민족 사회와 문화의 원형을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윤내현 교수가 중국 사서를 토대로 작성한 위만조선과 한사군 위치를 그린 지도. 만권당 제공 |
윤 교수에 따르면 고조선 건국은 서기전 24~23세기 무렵이다. 붕괴 시기는 서기전 1세기 무렵으로 2300여년간 존속했다. 동시대 중국에서는 요, 순, 하, 상, 서주, 춘추·전국, 진, 서한 시대였다. 중국 왕조는 존속 기간이 길어야 200~300년 정도였으나 고조선은 2300여년이나 존속했다. 한 왕조가 이토록 오래 존속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인 면도 있을 것이다. 사회가 안정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일 수 있으나 변화가 적어 발전이 더뎠을 것이다.
종래 사학자들이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에 있던 작은 정치집단으로 서술하면서 부여, 고구려, 읍루, 발해 등 만주에서 일어선 나라들을 한국사에 포함했다. 그러나 이는 모순이라고 윤 교수는 지적한다.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에 근거했다면 중국 동북쪽 나라들이 한국사에 포함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사의 출발점은 신라가 되어야 하고 신라→통일신라→고려→조선이라는 체계로 서술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조선사를 복원해보면 한민족 근거지가 만주였다는 게 더욱 분명해진다. 윤 교수는 “혹시 한국사의 영역을 만주까지 확대하려는 의도에서 고조선을 재구성했다면 이는 또하나의 역사 왜곡으로, 역사학자로서 큰 죄를 짓는 행위”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특히 모든 한국사 개설서에서 위만조선과 한사군을 고조선에 포함해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오류라고 했다.
단군조선은 한반도와 만주의 토착인들(이들이 한민족을 형성했다)이 세운 한민족 국가이고, 위만조선은 중국 서한의 망명객 위만(衛滿)이 세운 나라였다. 그리고 한사군은 서한 무제(武帝)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설치한 서한의 행정구역이었다. 따라서 단군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은 성격이 전혀 다르며 위치도 다르다. 이들을 하나의 명칭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조선은 위만조선에 의해 계승된 게 아니라 고조선의 제후국 즉 부여, 고구려, 읍루, 옥저, 최씨낙랑국, 동예, 한(韓)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는 것이다. 사마천이 사기 ‘조선열전’에 위만조선을 포함한 것은 서한의 영토였기에 그랬다고 그는 주장한다. 당시 중국 왕조의 질서에 속하지 않은 고조선을 사기에 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기자와 위만은 같은 중국 망명객이었지만 사기에는 기자에 대한 독립된 기술이 없다. 이것은 기자와 위만의 성격이 달랐음을 입증한다.
고조선의 강역 역시 중국 사서들의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와 만주 전역이었다. 서쪽으로는 베이징 근처의 난하 유역에 이르렀고 북쪽은 아르군강, 동북쪽은 흑룡강, 남쪽은 한반도 남부의 해안선에 이르렀다는 게 확인된다. 마한, 진한, 변한 즉 삼한(진국)의 위치도 한반도 남부가 아니라 지금의 요동 지역이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한국 사학계의 태두로 인정받는 이병도 역시 한민족 기원을 천신족(天神族) 환웅과 곰 토템족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았다”고 꼬집었다. 중국 쪽 사서들을 검토한 결과 우리 고대사가 너무 심하게 왜곡돼 있다는 게 윤 교수의 결론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 @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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